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왜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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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 노조의 파업 소식에 많은 시청자들이 응원을 보내는 한편으로, ‘방송 다 망가진 뒤 왜 이제 나서나’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약속 장소에 늦게 나온 애인에게 투정하는 심리와 비슷할지 모른다. 늦게라도 와서 반갑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 원망스럽다는. 


지난해 7월까지 4년 가까이, 방송출연을 위해 매 주 한 번 MBC에 드나들었던 나는 이런 심정에 공감하면서도 MBC 노조를 변명해주고 싶다. 그동안 사실 많이 싸웠다고. 싸우다 프로그램을 뺏기고, 먼 지방으로 쫓겨나고, 무더기 징계를 받고, 해고된 구성원들도 있다고. 파업만 해도 장장 40여일을 끌었던 2010년 상반기를 포함,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네 번이나 했다고. 집회 취재를 나갔다가 ‘내보내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찍어’하는 시민들의 질타에 쫓겨나고, 회사의 불공정보도에 항의해도 통하지 않는 무력감에 눈물 훔치는 이도 있더라고. 다만 불행히도 그들은 ‘아직’ 이기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희망을 담아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 그들은 마지막 싸움을 시작했다고. 이번엔 꼭 이겨야 할 순서라고.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이 토요일마다 기다리던 ‘무한도전’의 결방을 감수하면서 MBC 노조의 싸움을 응원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했던 MBC’를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MBC뉴스를 통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됐다. 4대강 사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대학생들은 왜 ‘반값등록금’을 절박하게 외치는지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에는 어떤 의혹이 있는지, KBS도청의혹의 전말은 무엇인지, 10.26 재보선에서 후보들에게 제기된 의혹의 진실은 무엇인지 파헤쳐주지 않았다. 대신 날씨나 교통, 여행 등 말랑말랑한 생활정보와 ‘아이돌’ 이야기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권력주변의 부패와 경제양극화로 인한 민생의 피폐가 폭발 직전인데, MBC뉴스는 ‘왜 그런가’ ‘어떻게 해야 하나’에 답을 찾아주는 대신 한가한 얘깃거리에 매달렸다.  


사회부조리 고발에 발군의 역량을 보여주었던 ‘피디수첩’등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들도 방송 소재 등에 대한 내부 갈등과 인사파동을 겪더니만 눈에 띄게 무뎌졌다. 방송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있게 할 말 하던 목소리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중요 쟁점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데 한 몫 했던 MBC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위상은 극소수 프로를 제외하곤 ‘분통 터져 채널을 돌려버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치열하게 진실을 파헤치고, 용감하게 고발하고, 권력과 자본을 긴장하게 하던 그 때의 그 MBC를 다시 보고 싶다. 

  

기자 출신이자, 언론인지망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원 교수로서 또한 내가 MBC 노조의 파업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느냐 퇴보시키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정치적 민주주의는 계속 진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놀라웠다. 쌓아올리는 것은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미네르바’ ‘피디수첩’ ‘촛불시위’ 등 정권에 불편한 입을 틀어막기 위해 검경이 동원됐고, 인권위원회는 무력화했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청부 처리’를 일삼았다. 쌍용차 등 노사대립의 현장에서는 공권력이 자본과 한 편이 되어 노조를 밀어붙였다. 정권에 쓴 소리를 하거나 밉보였다가 ‘밥줄’을 끊기는 연예인, 지식인이 줄줄이 나왔다. 민주주의가 저절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 떨리게’ 확인했다. 


이런 민주주의의 후퇴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들은 제 구실을 못했다. 특히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는 ‘공든 탑 무너뜨리기’에 앞장섰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진행자와 출연자들을 솎아 내고, 유능하고 비판적인 PD와 기자들을 제작 일선에서 변방으로 내몰았다. 이런 전보 조치 등이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줄줄이 나왔지만 경영진은 꿈쩍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피디수첩>을 두고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 항의하는 대신 시청자 사과광고를 냈다. ‘화룡점정’은 사규 개정이었다. 이른바 ‘소셜테이너법’이라 불리는 MBC사규의 ‘고정출연자 제한 조항’은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뚜렷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은 방송에 고정출연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진보적 목소리를 내 온 배우 김여진씨가 이 조항 신설 후 고정출연계획이 취소된 반면, 보수진영을 대변하고 정당관련 활동까지 한 전원책 변호사는 계속 출연한 것을 보면 어디에 쓰려고 만든 조항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할 방송사가 방송출연자의 사상을 사실상 검열하는 위헌적 사규까지 만드는 것을 보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이 조항의 폐기를 요구하며 지난해 7월 라디오 출연을 중단한 것은 MBC가, 그리고 우리 언론이 그렇게까지 벼랑을 향해 달려선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지난 4년간 MBC의 변화는 실상 한국 언론의 추락을 상징한다. MBC보다 더 망가진 언론사도 있고, 덜 한 곳도 있지만 많은 언론이 권력에 영합했고, 광고주인 재벌 앞에 더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꼼수다’ 같은 대안언론이 폭발적 인기를 모은 이유의 하나도 시청자가 제도권 언론에서 속 시원한 얘길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MBC 노조가 이번 싸움에서 공정방송의 길을 열면 우리의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회복에 희망이 생길 것이다. MBC 노조가 실패하면, 우리의 미래도 그만큼 어두워질 것이다. 


“MBC를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오로지 승리만 있을 뿐. 우리가 돌아왔다, 마!봉!춘!”


노조가 만든 파업 동영상 ‘MBC 프리덤’은 발랄하게, 신나게 할 말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창의력 넘치고 열정적인 인재들이 내부의 검열과 외부의 비난에 고개 숙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 함께 외친 구호처럼 ‘질기게, 독하게, 당당하게’ 끝까지 싸워 꼭 이겨주기 바란다. 당장의 목표는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복원이지만, 나아가 사장 선임방식을 바꾸는 법개정을 통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틀을 확립하는 과제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제작에 복귀하면 다시 또 어떤 부당한 압력이 있어도 피디들이, 기자들이, 아나운서들이, 작가들이 ‘깨알같이’ ‘꼼꼼히’ 따지고 저항하기 때문에 도저히 먹히지 않는 풍토를 똘똘 뭉쳐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들에게도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사랑했던 MBC’가 돌아오도록 각자 힘을 보태자고. MBC 시청자 게시판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청와대에, 각자의 지역구 의원에게 전화와 댓글, 이메일로 함께 목소리를 내주면 어떨까.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응원 메시지를 올리고 널리 퍼뜨리는 것은 어떨까. MBC 노조를 후원하는 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면 어떨까. 자유언론과 민주주의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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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BC노동조합 2012.02.29 1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