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을 재고하라

 

카프카에스크(Kafkaesk), 불안이나 소외 또는 좌절을 의미하며 관료기구나 권력구조의 위험에 직면하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는 용어다. 최근 MBC 구성원들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조직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 PD로서, 기자로서의 양심이나 소신은 한낱 비루한 페르소나에 불과할 뿐이다.

 

파업 복귀 이후 회사는 그 어떤 이론(異論)도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인 결정을 수없이 되풀이 해왔다. 그 과정에서 하의상달, 수평적 논의, 민주적 소통이라는 MBC 조직문화의 장점은 깡그리 소멸되었고 대신 상명하달의 군대식 문화가 구성원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이러한 비민주적 의사소통의 결정판이 지난 15일 발생했다. 무려 4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평일 <뉴스데스크>의 시간대 이동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보도국장과 편성국장조차 당일 개편 날짜를 통보받았다고 하니 실로 어이가 없다.

 

실무라인이 철저히 배제된 이번 결정에 대해 편성국PD들은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결정할 수 있을까? 지난 16일 편성국PD들은 윤길용 국장과의 면담을 통해 메인뉴스의 이동은 치밀한 사전검토와 충분한 준비작업 끝에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갑작스러운 이동 결정에 대해 재고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윤국장은 임원회의에서 115일자로 <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음을 통보해왔다.

 

편성행위란 도대체 무엇인가? 과학적 분석을 근거로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통해 최선의 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이유로 편성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만 일관하는 윤국장의 모습을 보면서 편성국PD들은 심한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낄 뿐이다. 우리는 경영진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115일로 예정된 <뉴스데스크> 이동을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시기의 부적절성

 

현재 본사는 가을개편(10/8) 2주차를 맞고 있다. 파업복귀 후 빠듯한 준비기간으로 개편 첫 주 방송되지 못했던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는 사실상 개편 첫 주라 할 수 있다. 개편 후 한 달이면 새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습관이 채 형성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형 개편을 연이어 단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무모한 자해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주말 8시대 메인뉴스 경쟁에서 보듯이 SBS <8시 뉴스>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도하는 본격적인 맞편성은 주말의 열세가 주간 전체로 확대돼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콘텐츠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시간대 이동 효과는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분석과 치밀한 준비 작업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편성행위는 채널의 안녕에 위해를 가하는 무서운 흉기로 작용할 뿐이다.

 

편성전략 전술의 부재

 

무엇보다도 한 채널의 메인뉴스 시간대 이동은 전사적인 자원을 총동원 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평일 <뉴스데스크>의 갑작스러운 이동 결정에서는 그 어떤 전략 전술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115일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D-day만이 존재할 뿐이다. <뉴스데스크> 이동에 대한 준비과정이 전무하다보니 이번 개편은 결국 아랫돌로 윗돌을 괴는 하석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 졸속으로 기획된 신규 콘텐츠를 투입해야하고 시간대와 시청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기존 프로그램들을 연쇄적으로 이동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무릇 개편은 전체적인 편성전략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뉴스데스크> 이동은 보도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위해 타 프로그램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리한 개편으로 MBC 전체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준비 없는 조급한 개편이 성과를 낼 수 없음은 그동안 수많은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채널 파워의 약화

 

<뉴스데스크> 시간대 이동은 시청률 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채널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다. 채널파워는 보도에서 나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영진이 <뉴스데스크> 이동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 또한 경쟁력 강화를 통한 채널영향력 확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뉴스데스크> 이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명분과 실익을 둘 다 놓치는 하책의 우려가 높다고 판단한다. 뉴스 수요가 집중된 대선정국을 감안하면 지금은 시간대 이동이라는 변수를 추가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킬 게 아니라 차별화된 리포팅과 구성을 통해 어떻게 <뉴스데스크>의 내실을 다질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진단의 오류

 

경영진이 평일 <뉴스데스크> 이동 이유로 제시한 시청률 회복은 시간대 이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 발표한 뉴스이미지 조사결과 MBC 뉴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불공정성이 지적된 바 있다. MBC 뉴스를 신뢰하기 어려워 떠난 시청자를 단순히 시간대를 바꿈으로써 되찾아 올 수는 없다. 문제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과연 뉴스 시간대가 부적절해서 시청률이 하락한 것일까? 여러 조사를 통해 이미 밝혀졌듯이 시청자들이 MBC 뉴스를 외면하는 것은 MBC뉴스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지고 결코 병을 치유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비책을 결코 마련할 수 없다. 또한 실무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의사결정의 비민주성과 권한의 과도한 남용은 결국 '불유쾌한 파멸'로 귀결될 뿐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2012. 10. 17

 

편성국 PD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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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BC노동조합 2012.10.1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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